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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읽는 전쟁 세계사 2

by 실화소니 2019.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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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최초의 대격돌! : 페르시아 전쟁 (BC 492년 ~ BC 448년) ②


『고대 헬라스(Hellas) 세계의 약사(略史)』 21편(최종회)


《상업과 무역의 경제대국, 코린토스(Κόρινθος, Kórinthos)》




8. 바키아다이 가문


여느 나라들처럼 신화적 시대와 암흑기를 거치고 난 코린토스는 유력했던 '바키아다이(Bakkiadai)' 가문의 사람들이 통치하게 됩니다. 코린토스의 유력 귀족 가문이었던 이들은 BC 8세기부터 7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코린토스를 지배했는데, 이 시기에 암흑기에 크게 위축되었던 코린토스의 문화적 생산력을 확장시켰습니다.

바키아다이 가문은 다른 귀족 가문들과 힘을 합쳐 코린토스의 마지막 왕인 텔레스테스(Telestes)를 몰아내고 왕정을 무너뜨리고 귀족정치를 시작함으로써, 코린토스에 공화정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특히, 바키아다이 가문은 정치적 세력을 친족으로 구성하는 한편, 아테나이나 라케다이몬처럼 원로원과 민회같은 공화적인 정치기구를 만드는 등 정치적 체제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에 바키아다이 가문은 '케르퀴라(Kerkyra, 또는 코르퀴라, 오늘날 이오니아 해의 코르푸 섬)' '시라쿠사이(Siracusai, 오늘날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 식민시를 건설하는 등 대외적으로 영토를 확장합니다. 그리하여 BC 730년 경에 이르면, 식민시를 합친 코린토스의 인구는 약 7만 여 명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러나 인구의 급증과는 달리, 불과 200여 명의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들이 거의 모든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보니 다른 귀족들의 불만이 가중되기 시작했고, 빈부격차도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해외의 식민시의 생산물 역시 소수의 귀족들에게 집중되다보니 농토를 가지지 못한 다수의 가난한 시민들은 배를 주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바키아다이 가문은 이런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집안 사람 중 한명인 페이돈(Phaidon)에게 맡깁니다. 페이돈은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를 상속인 수의 증가로 보고, 한 가족당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 이외의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극단적 산아제한법을 만듭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결국 인구 증가가 빈곤의 원인이라 판단하고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일반 시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었고, 오히려 지주들의 이익을 고수하게 하는 반동적 조치일 뿐이었습니다. 이에 코린토스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누구 한 사람이 작은 선동만 해도 언제든 들고 일어설 조짐이 농후해졌습니다.



9. 큅셀로스, 참주정을 열다


BC 660년, 식민시 케르퀴라에서 그 곳의 시민들이 독립 무장투쟁이 벌어지자 바키아다이 가문은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코린토스 군이 대패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코린토스 시민들의 불만은 마침내 폭발해버렸고, 이런 위기를 호재로 삼아 민중의 대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바키아다이 가문을 내쫓고 권력을 쟁취한 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그가 코린토스에서 참주정의 시대를 연 '큅셀로스(Kypselos)'입니다.

큅셀로스의 어머니인 라브다(Labda)는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바키아다이 가문은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문 사람들끼리만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라브다는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와 결혼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헬라스 북부 지방에서 코린토스로 이주해온 집안의 남자인 에에티온(Eëtion)을 사위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큅셀로스가 태어납니다. 큅셀로스는 '상자의 자식'이라는 뜻인데, 이와 관련된 사연을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뒤 한동안 라브다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에에티온은 델포이로 가서 신탁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탁은 "너의 아들이 코린토스의 독재자가 될 것이다."는 예언을 내립니다. 이 예언을 전해 들은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들은 라브다가 낳는 아이를 죽이기로 모의합니다. 이윽고 라브다가 임신을 하고 산달이 가까워지자,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들은 출산 날에 라브다의 자식을 죽이기로 계획을 짭니다.

출산 날 당일,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 10명이 라브다의 집에 당도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방긋 웃는 얼굴을 보자 누구도 아이를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를 라브다에게 돌려주고 밖으로 나온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이를 꼭 죽이자고 다짐한 그들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라브다가 아이를 상자에 넣어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놓습니다. 그들은 라브다의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를 찾지 못했고, 결국 아이를 죽였다고 거짓말로 말을 맞추기로 하고 돌아갑니다. 이렇게 상자에 넣어져서 목숨을 건졌다는 의미로 아이의 이름이 큅셀로스가 된 것입니다.


훗날 큅셀로스가 성인으로 성장하자, 바키아다이 가문에서는 그래도 자신들의 피가 반은 섞인 큅셀로스를 죽이지 않았고, 무예가 뛰어난 점을 들어 그를 총사령관에 임명합니다. 어려서부터 바키아다이 가문의 전횡에 불만을 가져왔던 큅셀로스는 총사령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합니다. 총사령관에게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벌금을 다 물 때까지 감옥에 가둬두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금 중 일부를 이들이 내는 벌금의 일부로 받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 돈을 이용하여 죄인들의 벌금을 대신 내줌으로써, 민심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종세력의 힘을 업고 BC 657년, 자신의 병사들을 동원,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바키아다이 가문 사람들은 상당수가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살아남아 해외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큅셀로스는 다른 가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부자 귀족의 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10년 됭안 10%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또한, 큅셀로스는 쿠데타로 몰락한 귀족들의 농토를 가난한 시민들에게 나눠줬고, 이로 인해 시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 헬라스 인이 참가하는 고대 헬라스의 4대 체전 중 하나인 '이스트미아 제전'을 개최하여 코린토스를 널리 알리고 국가 위상을 높이는 등 코린토스 번영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고대 헬라스의 4대 체전 : 이스트미아 제전, 올림피아 제전, 피티아 제전, 네메아 제전을 말함.)



10. 페리안드로스의 참주 시대

  • 출처 - 역사랑 놀자



BC 627년, 큅셀로스가 편안하게 죽자, 그의 아들 페리안드로스(Periandros)가 뒤를 이어 참주가 됩니다. 그는 BC 627년부터 BC 587년까지 약 40여 년 동안 코린토스를 다스리면서, 헬라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독재정치를 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페리안드로스는 독재정치를 통해 국가적 사회적 질서를 확립했고, 교역 및 산업의 장려, 화폐 제도의 도입 및 감세정책 등을 실시함으로써 국가 및 민생 경제의 안정을 도모했는가 하면, 문화와 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코린토스를 경제 및 문화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페리안드로스는 밀레토스(Miletos, 지금의 터키 서부 해안에 있던 고대 헬라스의 이오니아 도시)와 아나톨리아 지역(지금의 터키)의 강국 뤼디아(Lydia)와 동맹을 맺고, 이웃나라인 에피다우로스(Epidauros)와, 앙숙이 되었던 케르퀴라 식민시를 다시 코린토스 영토 하에 두었는가 하면, 화폐 주조를 위한 은을 얻기 위해 칼키디케(Kalkidike, 그리스 본토 북부지역)포티다이아(Potidaia)와 아드리아 해의 일리리아 지역에 있던 아폴로니아(Apollonia)에 식민시를 건설하는 등 대외적으로 크게 국력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국강병의 이면에는 '잔혹한 폭군'으로써의 이미지가 페리안드로스에게는 더 많이 덧씌워집니다. 페리안드로스의 놀라운 치세는 대부분 정권 초기의 일들이었고,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는 피비린내나는 전형적인 폭군의 삶을 살게 됩니다.

여기에 페리안드로스가 폭군이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있었는데, 동맹국인 밀레토스의 참주 트라쉬불로스(Thrasybulos) 였습니다. 어느날 트라쉬불로스는 페리안드로스가 보낸 전령과 함께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전령이 보는 앞에서 곡식 사이를 거닐며 다른 이삭보다 더 실하게 자란 이삭을 모두 잘라버립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전령을 코린토스로 돌려보냅니다.

전령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페리안드로스는 트라쉬불로스의 이상한 행동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훌륭한 시민들을 죽여라."는 충고의 속뜻을 읽게 됩니다. 그때부터 페리안드로스는 정기적으로 유력 인사들을 잡아다가 이유없이 처형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페리안드로스의 잔혹한 인간성은 아내의 죽음에서 비롯된 일련의 행동들에서 명징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뤼시데(Lyside)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았는데, 그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카디아에 있던 나라 에피다우로스의 참주 프로클레스(Procles)의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뤼시데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큅셀로스뤼코프론(Lycophron)을 얻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페리안드로스는 뤼시데가 자신을 속이고 우롱하고 있다는, 첩들이 퍼뜨린 근거없는 소문을 전해듣고는 격분하여 아내 뤼시데를 계단에서 발길로 차 살해하고 맙니다. 이때 뤼시데는 뱃 속에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곧 이 소문이 사실이 아니고 첩들이 비방한 것임을 안 페리안드로스는 첩들을 모조리 태워 죽여버립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무고한 죽음을 알게 된 둘째 아들 뤼코프론이 아버지를 책망하며 외할아버지가 다스리던 에피다우로스로 망명해버립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기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반란은 페리안드로스에 의해 진압되고, 이 일로 에피다우로스는 코린토스에 병합되었으며, 뤼코프론은 코린토스와 앙숙이 되어버린 식민시 케르퀴라로 도망칩니다. 후에 뤼코프론은 케르퀴라에서 그가 페리안드로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케르퀴라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페리안드로스는 권력 유지를 위해 시민들의 지지기반을 확실하게 하는 방편으로 실업문제 해결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빈곤층 시민들을 위해 새로운 노예 수입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시민들의 임금을 안정시켰고, 한 사람이 고용할 수 있는 노예의 수를 엄격히 제한하여 중소 사업자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임금을 긴축적으로 조정하여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극단적인 조치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죠.

또한, 페리안드로스는 정적이라 할 수 있는 귀족들을 견제하기도 했는데,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는 사치 행위를 금했고, 귀족들의 잉여 재산은 거대한 황금상 제작에 헌납하도록 공공연히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퇴폐사업을 일소한다는 명분 하에 코린토스의 모든 매춘업자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페리안드로스의 잔혹한 독재가 길어질수록 그의 적은 날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중무장한 경호원들을 자나깨나 주위에 배치시킬 정도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페리안드로스는 BC 587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살아남은 아들 하나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외로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조카인 프삼메티코스(Psammetichos)가 권력을 잡지만 그 역시 3년을 견디지 못하고 귀족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코린토스는 다시 소수 귀족들에게 권력이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테나이, 라케다이몬(스파르타), 테바이, 아르고스, 코린토스 등 고전기 헬라스의 5대 강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습니다. 저마다의 문화와 정치체제를 발전시켜가며 고대 국가로써의 기반을 확립한 이들 나라들은 이제 여지껏 본 적 없는 낯설고 두려우며 거대한 다른 세계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아울러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두 개의 세계가, 운명과도 같이 충돌하는, 전쟁사의 한 획을 긋게 되는 역사의 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終)




※ 다음 회차부터는 본격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이 진행되겠습니다.







※ 참고서적

-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폴로도로스 著, 천병희 譯, 숲출판사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著, 천병희 譯, 숲출판사
- '역사', 헤로도토스 著, 천병희 譯, 숲출판사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中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著, 천병희 譯, 숲출판사
- '그리스 비극 깊이읽기', 최혜영 著,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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