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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정보

저격수의 역사 - 전쟁사(기습공격-보복)

by 실화소니 2019. 9. 23.

영국령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은 진행 중

신IRA, 북아일랜드 '기자 총격사건' 책임 시인.."진심으로 사과"





https://youtu.be/qp4VVSYnOGs

Investigating the New IRA in Northern Ireland - BBC NewsPolice in Northern Ireland say that any witnesses to the dissident republican murder of journalist Lyra McKee will be offered anonymity if they agree to give...www.youtube.com

Police in Northern Ireland say that any witnesses to the dissident republican murder of journalist Lyra McKee will be offered anonymity if they agree to give evidence against her killers. She was shot dead two weeks ago by the New Irish Republican Army, known as the New IRA. The killing has sparked a backlash against the hardliners who continue to launch attacks more than 20 years after the signing of the Northern Ireland Agreement that ended the Troubles. (북아일랜드 경찰은 반체제 공화당 언론인 라라 맥키의 살인에 대한 목격자들은 살인자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동의한다면 익명을 제안받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녀는 2주 전에 뉴 IRA로 알려진 뉴 아일랜드 공화당 군대에 의해 총에 맞아 죽었다.,이번 살인은 북아일랜드 협정 체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공격을 개시하는 강경파들에 대한 반발을 촉발시켰다)

Police say the group known as ‘Saoradh’ are the political voice of the New IRA. They say they played no role in the death of Lyra McKee. The BBC’s Ireland Correspondent Emma Vardy reports on the group from Londonderry.(경찰은 '사오라드'로 알려진 이 단체가 새로운 IRA의 정치적 목소리라고 말한다.,그들은 라라 맥키의 죽음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BBC의 아일랜드 특파원 엠마 바디는 런던데리에서 온 그룹에 대해 보고한다.)

북아일랜드 폭동이 큰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이를 취재하던큰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이를 취재하던 북아일랜드의 한 언론인이 총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4월 19일. 그의 이름은 리라 맥키(Lyra Mckee). 고작 29살의 나이다.(The reason why the Northern Ireland riots are recorded as a big incident is that a journalist in Northern Ireland who was covering them died in a shooting.On April 19, 2019. His name was Lyra McKee, only 29 years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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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과 IRA 반군의 저격전, 기습공격-보복…쌍방 막대한 인명 피해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국군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독립을 선포한 이후 영국과의 충돌은 더욱 심화됐다. 종교적 갈등 문제뿐만 아니라 비합법조직인 IRA 반군들의 테러공격이 확산되고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1969년 여름 영국과 아일랜드의 종교분쟁, 즉 아일랜드의 토착민 가톨릭 교도들은 영국계 프로테스탄트 과격파들에 대해 결사적인 태세로 저항했다.


https://youtu.be/zc41L1-KcG0

DANNY BOY by Jackie Evancho - IRELAND🙏🕯️Enjoy the timeless ballad: "Danny Boy" sung by Jackie Evancho with her angelic voice. http://www.ine-pps.nl/?page=movies&it... 🙏🕯️For me, Jackies version ...www.youtube.com


'런던데리 에어(The Londonderry Air') 는 북아일랜드의 오래된 민요가락인데요.
번안곡(飜案曲 ), '아 목동아(Danny Boy)'의 선율이 바로 '런던데리 에어'입니다.



이로 인해 각 지방이 거의 무정부 상태로 붕괴됐고 영국 육군은 가톨릭과 신교도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진압작전에 투입되지 않으면 안 됐다. 초기에는 우선 유혈사태를 진압하는 데 주력했으나 1970년에는 본격적으로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북아일랜드는 총격전이 난무하는 무법천지로 돌변했다. 북아일랜드 반군(IRA)과 영국군의 전투는 보이지 않는 저격전으로 치달았다.

영국군들이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와 런던데리 도로를 이동할 때 IRA 저격수들이 건물 속에 숨어 공격을 가했다. IRA 총잡이들은 영국 정찰병에게 기습사격으로 피해를 준 다음 감쪽같이 사라졌다. 많은 영국군 병사가 이러한 저격전의 희생물이 됐다. 이에 대해 영국군은 남 알마하의 ‘산적’ 마을로 불리는 곳에서 강력한 저격전으로 보복했다.


1972년에는 런던데리에서 가톨릭계 주민이 영국 공정대를 공격했는데 여기에 대해 공정대원이 발포해 민간인 13명이 사망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 IRA는 극렬한 방화와 저격으로 보복했다. 영국군도 유혈폭동을 진압하던 중 16명의 병사가 사망하자 더욱 신중하고 강력한 군사작전으로 전환했다.



영국군 스나이퍼들은 집요하게 IRA 반군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자 반군들도 노출된 헌병대나 비무장 병사들, 관광객과 같은 무방비 상태의 손쉬운 목표물로 눈을 돌렸다. 또 도심지에서도 폭탄 테러를 공격의 주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총격전은 지방에서 더 오래 계속됐다. 특히 수색정찰이 어려운 아일랜드 공화당의 성역인 프로방스 국경 지역에서 자주 발생했다. 관목지대에 숨어 IRA 반군들은 영국 치안부대를 향해 저격을 가했다. 특히 군인과 정부 고관을 저격 대상으로 삼았다. 1979년 8월 28일에는 태평양전쟁 중 대일전의 최고사령관을 지낸 마운트 밧덴 백작이 사망하고, 1984년 10월 12일에는 대처수상이 숙박 중인 호텔이 폭파당했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반군들의 폭력이 증가하자 영국군은 도시와 지방 각지에서 정보수집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SAS, MRAF, 그리고 M14 정보부대와 같은 특수부대에서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많이 전개했다.

1992년 8월, IRA 반군들이 크로스마그린의 상가 거리에 서 있던 한 영국 병사를 저격함으로써 쌍방의 저격전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11월에는 훼만나의 한 영국 경찰관이 국경을 넘어 날아온 총탄에 맞았는데 이는 한국 DMZ의 북한군 장거리 총격사건과 유사했다. 1993년에는 헌병대 소속의 병사들이 남알마하에서 장거리 소총사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사냥꾼 출신인 예전 IRA 반군의 행동과는 달리 이제는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스나이퍼를 투입해 영국군을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다. 영국군 당국도 이러한 사실을 자인했다. “반군 저격수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스나이퍼들이다. 우리는 이들 테러리스트의 고난도 공격에 직면하고 있다.”일부 IRA 반군들은 미제 구경 0.5 인치 바렛트(Barrett) 82모델의 무거운 저격용 소총을 사용했다.

이 총은 빛의 반사를 차단할 수 있는 무기로서 유효사거리가 최대 1마일이 넘었다. 이는 영국 국경경비 헌병대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헌병대의 랜드로버 차와 방탄복은 바렛트 모델 같은 총으로부터 방호력이 부족했다.영국 언론에서는 IRA 저격수의 미제 소총에 결국 미군 특수부대도 당하게 될 것 이라고 비꼬았다.

바렛트뿐만 아니라 레밍턴·우드마스터와 같은 많은 미제 사냥총이 아일랜드에 도입됐는데 영국에서는 IRA 반군들과 미국 무기상들의 이러한 비밀거래를 크게 비난했다. 영국 육군이 전투를 치른 크로스마그린에서는 IRA 반군 지지자들이 ‘스나이퍼의 도시 크로스마그린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는 플래카드를 써 붙여 영국군 헌병대를 조롱했다.



그러나 반군들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자멸을 초래했다. 그들은 곧 최고 수준의 영국군 스나이퍼들, 커먼웰스(Commonwealth) 부대의 저격수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됐고 결과는 반군들의 참패로 끝났다.오늘날까지 영국과 IRA 반군의 싸움은 34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있지만 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 런던데리 도시 곳곳에는 영국 국기와 북아일랜드 국기가 설치되어 있다.

▲ 데리 성벽(The Derry Wall)에서 내려다 보는 런던데리 전경



출처 ; 양대규 전사연구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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