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천문학】
【고대 그리스 천문학】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ios : 90-168, AD)는 천문학을 형이상학(形而上學)으로부터 탈출시켜 수리적(數理的)으로 정리함으로써 천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오랜 관측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과거의 자료들과 함께 정리하고 수리적으로 논증한 『알마게스트(Almagest)』는 원래 제목이 『천문학 집대성(Megale Syntaxis tes Astoronomias)』이었는데, 이 책은 그의 점성학(占星學) 백과사전인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의 자매편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존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학문적 측면에서 천상계(天上界)를 해석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천문학의 실용적(實用的)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탄생일과 관련된 별자리를 통해 운명을 점친다든지, 왕위를 계승하는 대관식(戴冠式)은 언제가 좋은지, 행성이 어떤 운동을 할 때 길(吉)하고 불길(不吉)한지 등을 알아보는 것에 천문학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연구 초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우주 모델과 잠시나마 융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얻게 된 결과들이 도저히 아리스토텔레스와 동반할 수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1967년에 발견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 『행성의 가설(Planetary Hypotheses)』의 내용을 통해 확인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의 운동으로부터 모종(某種)의 규칙성을 추출하여 그에 입각한 행성계(行星界)를 만들려는 노력을 했는데, 그런 목적에 이끌려 행성의 속도, 크기와 밝기 등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편심(偏心)’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편심(偏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행성들이 회전하는 천구의 중심은 지구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데, 이때 지구의 위치가 바로 편심이다. 편심은 지구에서 행성들을 관측할 때, 행성들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 보이게 되는 것과 천체의 회전 중심(기하학적으로 떨어진 거리가 서로 동일하다는 의미를 지니는 중심일 뿐이지, 특별한 의미가 없는 중심점)을 기준으로 행성들의 회전 속도가 일정하더라도, 지구에서 보게 되면 위치에 따라 행성들의 속도가 달라져 보이게 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렇게 편심을 도입한 이유는 지구 둘레를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것과 행성들이 원궤도(圓軌道) 등속 운동을 하고 있다는 원칙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오랫동안 천문학계를 지켜왔던 ‘지구 중심의 원운동’이라는 원칙은 자연스레 깨져 버리고 말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 별(항성)들이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게 되는 이유를 지구의 자전(自轉)에서 찾지 않고, 태양, 별(항성)들이 박혀 있는 천구(天球)들이 매일 지구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천체들의 일주운동을 이렇게 설명하게 된 근거는 만약 지구가 하루에 한 번씩 자전하게 된다면, 그 속도는 너무나 빠른 것이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에 의한 원심력(遠心力)으로 인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체들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함에도 실제 그런 현상들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그렇다면 태양, 별들은 더 큰 원을 그리며 더 긴 원주를 더 빠르게 회전하는데, 그 원심력은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큰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점차 빠르게 더 큰 원을 그리며 운동하게 될 것이고, 그 확장은 영원히 계속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태양과 별들이 항상 동일한 크기의 원주를 그리며 운동하는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에 대해 던진 물음)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런 제안들은 지금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허황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직업적 천문학자들과 점성술사들에게는 상당히 각광을 받았다. 왜냐하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천상계 현상들을 속속들이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알마게스트』가 각 행성들의 운동만큼은 나름 수학적 논증들을 통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전반적으로 봐서 일부 오차가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학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 한계선 안쪽에 있었다.
이 같이 학계의 두터운 신뢰에 힘입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1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경쟁 상대 없이 오랫동안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래 그림은 편심에 위치한 지구, 그리고 행성들이 주전원을 그리며 지구 둘레를 공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행성계 모델을 나타낸 것임)
출처 -『우리가 잘 몰랐던 천문학 이야기』 임진용 著